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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노 (Charles Gounod) 본문

클래식 (CLASSIC)/작곡가 (Composer)

구노 (Charles Gounod)

장미의 전쟁 2019. 4. 17. 11:54

샤를 구노 (프랑스)

Charles Gounod (1818-1893)


가곡 「아베 마리아」「세레나데」

가극 「파우스트」로미오와 줄리엣


 1839 로마 대상을 수상하고 3년간 로마 유학. 1842 파 외방 전교회의 성가대장. 쉴피스 신학교에서 신학을 수업, 수도원 입회를 단념하고 오페라 작곡으로 전향, 「파우스트」(1859), 「로미오와 줄리엣」(1867) 작곡. 만년 종교 작품에 바쳐 미사곡, 속죄 명작을 남겼다.



조상이 루이 16세를 섬기던 명문에서 태어난 구노는 부친이 유명한 화가이고, 모친은 피아노를 잘 치는 예술적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한테 음악을 지도받았으며, 생 루이 고등학교로부터 1836년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 거기서 알레비에게 대위법을, 파에르와 르쉬르에게 작곡 등을 배웠다.

 

1839년에는 칸타타 《페르낭드(Fernand)》로 로마 대상을 획득하여 3년 동안 로마에 유학했었다. 그는 로마에서 종교 음악에 매우 관심을 가지고 또한 팔레스트리아 음악을 깊이 연구했으며 1841 년에 초기의 중요한 작품인 미사곡을 로마에서 처음으로 초연, 이어서 레퀴엠 등의 종교극을 썼었다. 귀국 도중에 독일, 오스트리아를 방문하여 슈만의 작품을 대하게 됨으로써 시인 기질인 그는 그것에 마음이 끌렸고, 또한 멘델스존과도 사귈 기회를 가져 도움이 되는 바가 많았었다.

 

파리에 돌아온 그는 오르가니스트와 합창장이 되어, 신학을 연구하는 한편으로 합장곡을 썼는데,이 무렵의 그는 주로 베버, 베를리오즈, 슈만 연구에 힘썼다. 오페라는 우연하게 사귀어 온 유명 가수 가르시아(Manuel Garcia)의 딸 폴린 비아르도(Pauline Viardot-Garcia)의 부탁으로 그녀를 주연으로하는 《사포(Sapho)》를 쓴 것이 처음이었다. 이 가극은 1851년에 공연, 결과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로부터 10곡쯤의 가극을 쓰는 동기가 되었다.

 

다음해부터 약 9년간 그는 오르페옹의 코러스를 지휘 했는데,그 동안 몇 개의 합창곡의 창작이 이루어졌다. 또한 그는 연구심이 강하여, 교향곡에서부터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곡이며 실내악 등을 이 무렵에 작곡했는데, 오늘날 그것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영원히 빛나게 한 프랑스 오페라의 명작 《파우스트 (Faust)》는 그의 오페라의 제 4번으로 1859년에 초연되었는데, 10년 후에 다시 손을 대어 발레를 첨가시킴으로써 참다운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 후 구노는 다시금  8곡의 오페라를 작곡하였으나 이 명작을 정점으로 하여 후대의 작품에는 오히려 역행적인 경향이 보이는 것이 주목된다. 《파우스트》 이외의 것으로 제일 성공한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et Juliette)(1869)는 정성들여 쓴 아름다운 음악을 지니며, 관현악이 성부를 잘 남려주고 있다.  그러나 구성적 균형에는 신경을 쓰고 있지만, 형식에는 별다른 신선미가 없다.


Korea National Opera Gounod Romeo & Julette (1부, 2부)



 1870년에 발발한 보불 전쟁 때는 런던에 피난, 5 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로열 앨버트 홀을 위해 칸타타를 썼다. 1875년 파리에 돌아온 후에도 오페라를 썼으나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고, 만년의 10년간은 조용한 생활을 즐기 면서 종교와 대결, 3개의 오라토리오 《토비 (Tobie), 《속죄 (Ridemption), 《죽음과 삶 (Mors et Vita) 》 등을 썼으며, 또한 《잔 다르크의 미사 (Messe à Jeanne d'Arc)(1887) 등 몇 개의 종교곡을 작곡했다. 1880년 프랑스 최고위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이 수여되었고, 그로부터 13년 후인 1893 10월에 파리에서 75세로 생애를 마쳤다.

 

구노가   반성격적 이라고 평을 받았던 것은 인간 구노로서와 작곡가 구노로서의 양면에서 였겠지만, 오페라 작곡에 있어서 프랑스 이외의 것에서 그 소재를 얻어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절충적 음악으로 오페라를 만들었다는 점이 흔히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잘 익힌 관현악법과 화성 색채가 풍부한 분위기 묘사의 기법은 역시 프랑스풍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리라.

 

가극 작곡가로서 의 구노는 그가 존경 한 모차르트와 달리 성격 묘사가 불충분했고,또한 비제와 같은

극장 감각의 천부도 지니지 못하였지만, 그러나 그 신선하고도 밝고 세련된 선율미의 매력은 크다. 그의 오페라는 일관된 연극의 재미나 박력에 있어서는 부족한 점이 있었으나, 그 중 어떤 장면을 보면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차분한 분위기, 그 나름의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

 

요컨대 그의 음악은 두드러진 화려함이나 박진감은 없지만, 무리하게 끌고 가는 억지가 없이 대체로 원만성을 유지한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프랑스 음악에 보이는 우아, 청초, 단정, 세련, 진지의 조화가 이루어져 그 자유스런 표현이 후배들에게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그래서 그가 없었던들 비제 혹은 마스네 둥의 오페라나 포레, 뒤파르크, 드뷔시 둥의 근대 가곡이 그처럼 발전할 수가 없었으리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구노가  프랑스 음악 부흥의 최초의 대가 로 꼽히며 근대 프랑스 음악의 선구로 인정되어 프랑스의 19세기 음악사를 장식하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어느 시기에는 성직에 들어가려고 생각했을 정도로, 속세 계와 종교계, 음악가와 종교가의 갈등 속에 살았으며,작품도 오페라와 종교곡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 JS 바흐를 경애했는데 그의 곡으로 유명한 《아베 마리아》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의 제1권 제 1번의 《전주곡 C장조》를 반주로 사용하고 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크게 극장 음악, 기악곡, 성악곡,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극장 음악으로는 오페라 《사포》, 《피투성이가 된 수녀》, 《벼락 의사》, 《파우스》, 《피레몽과 보시스》, 《시바의 여왕》, 《미레유》, 《로미오와 줄리엣》, 《폴리윅트》등이 있고, 기악곡은 《무도회의 주억》, 《인형의 장승행진곡》, 《성 세실리아에의 찬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의 전주곡 No.l 에 의한 명상곡(아베마리아)》등이 있다.

 

성악곡은 오라토리오 《속죄》, 《죽음과 삶》, 칸타타 《갈리아》, 미사 《성 세실리아를 위한 장엄미사》, 《수호천사의 미사》, 《잔 다르크의 미사》, 합창곡은 《아뉴스 데이》, 《아베 벨름》, 《상투스》, 《바빌론 강변》, 《십자가에 메달려》, 《신의 영광은 세계에 넘쳐》, 《고르인의 술과칼의 줌》 등이 있고 가곡은 《나자렛의 예수》, 《예루살템》, 《잔 다르크에의 기도》, 《그대여 어디에》, 《세테나데》, 《베네치아》, 5 월에》, 《저 너머에 푸른 언덕이 있다》 등이 작곡되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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