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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제를 위하여 (bagatelle in a minor woo 59 'fur elise') 본문

클래식 (CLASSIC)/피아노

엘리제를 위하여 (bagatelle in a minor woo 59 'fur elise')

장미의 전쟁 2019. 11. 11. 14:58

Bagatelle No. 25 in 솔로 피아노를 위한 마이너 ( WoO  59, Bia  515)
1827년 작곡가 사망 후 40 년이 지난 1867 년까지 이 곡은 발표되지 못했다. 루드비히 놀 (Ludwig Nohl) 작품의 발견자는 원고 사본의 원고가 이제 없어 졌다고 주장했다. "Für Elise am 4 April 27 [1810] zur Erinnerung von L. v. Bthvn "("L. v. Bthvn을 ​​기념하여 4월 27일 엘리스를 위해"). 이 음악은 28-33 페이지의 Nohl 's Neue Briefe Beethovens ( 베토벤의 새 편지) 의 일부로 출판 되었으며 Johann Friedrich Cotta의 슈투트가르트에서 인쇄되었습니다. 

오늘 들었던 "Für Elise"의 버전은 Ludwig Nohl에 의해 쓰여진 이전 버전입니다. 베토벤의 학자 배리 쿠퍼 ( Barry Cooper) 가 후반의 원고에서 필사 한 반주가 급격히 바뀐 이후 버전이있다 .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첫 번째 주제이며, 왼쪽 아르페지오 는 16 음으로 지연됩니다. 과도 섹션에는 B 섹션으로의 추가 막대 가 몇 개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승하는 작은 아르페지오 수치가 나중에 조각으로 이동합니다. Poco moto 의 템포 마킹 은 Ludwig Nohl이 기록한 원고에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재는 잃어 버렸습니다). 이후 버전에는 Molto grazioso 마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베토벤은 조각을 바 게텔의주기에 추가하려고 의도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루트비 판 베트벤 (Ludwig van Beethoven)
1770년 121 17일~ 1827년 31 26일

독일에서 대어난 고전 음악 시대의 작곡가이다. 삶의 대부분을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았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전환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음악적 인물이었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널리인정받고 있다. 베토벤이 위대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청각장에클 알고 있었다는 것인데, 작곡가로서 지명적인, 귀가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도 그는 수백년간 사랑 받는 무수한 대작들을 남겼다. 그는 고전음악을 완성했고, 낭만주의 음악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베토벤을 대표하는 작품
교향곡 – 3번(영웅), 5번(운명), 6번(전원), 7번, 9번(합창)
피아노 소나타 – 8번(비창), 14번(월광), 15번(전원), 17번(템페스트), 21번(발트슈타인),23번(열정)
바이올린소나타 - 5번(봄), 9번(크로이저)
피아노협주곡 - 5번(황제)
피아노 삼중주(대공), 바이올린렵주곡, 후기현악4중주, 오페라(피델리오), 장엄미사 등이 있다.

 

[ 얼리제를 위하여. A단조 WoO. 173 ]
❝바가텔❞이라는 제목 아래 ❝4월 27일 엘리제의 추억을 위하여, 베토벤 작곡❞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1810년 무렵 작곡된 것으로 생각되며 소곡으로 기교적인 면예서 쉽기 때문에 초보자나 어린이들이 좋아한다.
a-b-a-c-a로 되풀이되는 작은 론도형식이다.

[ 작곡배경 ]
1810년 이 곡을 작곡할 때 벨호벤은 브라운슈바이크 백작의 딸인 테레제와의 약혼을 최소하고 자신의 주치의의 조카딸인 테레제 마르파티에게 구혼을했다. 열리제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두 여인중 하나로 추정된다. 물론 베토벤의 여자관계가 문란했던 것을 감안하면 제 3의 인물일 수도 있다.

[ 베토벤의 ❝엘리제❞는 누구일까? ]
악성(樂空)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명곡 ❝엘리제를 위하여❞의 주인공 엘리제의 정체가 확인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독일 언론에 따르면 베를린의 음악연구가 클라우스 마르틴 코피츠는 지난 수년간 ❝동시대인의 눈에 비친 베토벤❞이란 제목의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신문기사, 편지, 시, 메모 등 당시 베토벤과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던 사람들의 모든 글을 분석한 결과 엘리자베스 뢰켈이라는 여성이 엘리제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1793년생으로 베트벤보다 23년이나 어린 열리자베스 뢰켈은 베트벤의 오페라 피델리오에서 남자 주연인 플로레스탄 역을 맡았던 베토벤의 친구 조제프 뢰켈의 여동생으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피아노 연주자와 오페라 가수로 활동했다.

당시 진구들사이에서는 ❝얼리제❞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그녀는 1810년 밤베르크의 한 극장에서 활동하기 위해 이사했는데 베토벤이 이별하게 된 얼리제와의 추억을 담아 피아노 소품을 작곡했다는 것이다.

코피츠는 또 베토벤이 ❝프로이라인(영어의 미스에 해당하는 독일어 존칭) 뢰켈❞이 아니라 단순히 엘리제라는 이름을 쓴 것은 그들이 그 만큼 친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실제로 엘리제 자신이 베토벤과의 관계에 대해 글을 남겼다고 말했다.

얼리제는한 편지에서 베트벤, 기타연주자 마우로 줄리아니, 그리고 나중에 그녀의 남편이 된 작곡가 요한 네포무크 喜훔멜 등과 어물렸던 만찬에 대해 얘기하면서 ❝라인 지방 특유의 장난기가 넘지는베트벤이 끊임 없이 괴롭혀 어쩔 줄 몰랐다. 진한 애정으로 팔을 꼬집기도 했다❞고 묘사했다.

얼리제가 훔멜과 결혼하고 나서도 베토벤과 엘리제의 우정은 계속됐다. 베토벤이 1827년 3월 운명하기 며칠 전 엘리제는 그의 집을 방문했다. 그녀는 자신이 경배했던 위대한 작곡가를 기억하기 위해 그의 머리칼을  잘라냈고 베토벤의 깃 펜도 선물로 받았다.
코피츠는그동안 베토벤이 1810년 청혼했던 테레제 말파티가 ❝얼리제❞라는 주장이 유력하게 자리잡았던 반면 엘리자베스 뢰케리라는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베토벤 연구가였던 루트비히 놀(1831-1885)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865년 이 작품의 초록을 발견해 테레제에 헌정한 곡이라고 발표했던 놀은 원본 악보를 테레제의 집에서 본 적이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원본은 사라졌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들은 모두 베토벤이 다른 곡들을 구상하면서 쓴 불완전한 형태의 초록들 이다. 그러나 만약 이 작풍이 실제로 테레제가 아닌 엘리제를 위해 작곡된 것이라면, 또 놀의 주장이 맞는다면 어떻게 원본이 테레제의 순에 들어갔을까.

코피츠는 이에 대한 가설들 제시하면서 물론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즉 테레제가 베토벤의 집에 와서 우연히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곡의 악보클 보고 ❝엘리제가 누구에요? 아직도 나와 결혼하려는 건가요?❞라고 물었는데 테레제에 청혼했던 베토벤으로서는 엘리제를 위해 만든 곡을 테레제가 본 것예 대해 크게 당황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본에 있는 베토벤 하우스 산하 베토벤 문서보관소의 베른하르트 아펠 소장은 현재 출간을 위해 막바지 작업이 진령 중인 코피츠의 책을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에 결론쿨 내릴 수는 없지만 그의 가설에 회의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아펠 소장은 ❝열리제는 당시 빈에서는 아주 흔한 이름이었다❞면서 누가 진짜 열리제인지 입증하려면 원본 악보가 사라지기 전 누구의 손을 거쳤는지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널리 알려지는 ❝엘리제를 위하여❞는 원래 장례식용 곡입니다. ]
베토벤이사랑하는 여인 테레제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갑작스러운 죽음용이 베토벤에게큰 충격이었고, 혼란속에서 마음을 정리하면서 이 곡을 만들었습니다. 만났던 날들을 기억하면서 떠난 연인의 장려식장에서 들려준 곡입니다.  그래서 이 곡은 추도식용이라고 볼 수있습니다. (베토벤의 악필때문에 원래 이름인 테레제가 엘리제로 잘못 해석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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